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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한국기원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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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기원의 유래

2. 대한바둑협회와 차이점?

3. 최근 LG배 관련 사과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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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의 유래

○ 1945년 한성기원의 설립

  재단법인 한국기원은 바둑문화 창달과 보급, 전문기사의 기예 향상을 목적으로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현대바둑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이전에 1945년 11월에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이 한성

  기원을 설립한것이 실질적인 한국기원의 유래라고 볼 수 있겠다.

 

 

○ 1949년 대한기원으로 개칭

  한성기원이 설립되기 전에 앞선 글에서 설명했던 순장바둑과 19세기말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근대의 바둑은 혼재 양

  상을 보였다. 일본에 건너가 체계적인 바둑수업을 한 조남철 9단이 1941년 初단을 획득 후 1943년 귀국하게 된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의 간판을 걸고 바둑보급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성기원은 공동 조직으로 프로기사제도 모색, 대회창설 등 기초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한국바둑보급에 전력, 오늘날 한국

  기원의 모태가 됐다. 이후 한성기원은 1948년 4월 조선기원으로, 1949년 7월 대한기원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 1954년 한국기원 창립

  대한기원은 1950년 6월 20일 최초의 단위결정시합을 개최, 조남철 9단과 함께 민중식, 이석홍, 유진하, 김봉선 등 13명의

  初단이 탄생했고 도중에 한국전쟁이 터져 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부산에서 피난기원을 운영하던 대한기원은

  1953년 12월 31일에 명동에 첫 발을 내딛는다. 마침내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창립되고 초대 총재에 윤호

  병, 초대 이사장에 장경근이 추대,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바둑보급이 시작된다. 한국기원은 프로기사제도를 확립하고 바둑

  인구의 저변 확대로 내실을 다지고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 프로기전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기원

 한국기원은 1954년 4월 10일 제1회 승단대회를 개최하고 6월 20일 제1회 입단대회를 개최했다.

 1955년 3월에는 최초 국제공식대회인 제1회 한중 위기교류전을 개최하였고, 조남철, 김봉선, 민영현, 장국원이 출전하여

 16:8 압승을 거두었다.

 

 

 

한국기원 VS 대한바둑협회 차이점?

 

○ 우리나라에는 바둑을 관할하는 2개의 단체가 있는데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이다. 한국기원은 주로 프로, 대한바둑협회는 아마추어 관련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된다. 법적으로도, 대한바둑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사단법인이고 한국기원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재단법인이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또한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하게 되어있고 이러한 이유로 대한체육회에 소속된 단체는 한국기원이 아니고 대한바둑협회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프로 바둑기사는 한국기원 소속이고 아마추어 바둑 기사는 대한바둑협회 회원이 되는 것이다. 

 

 

 

최근 LG배 관련 한국기원의 공식 사과

○ 앞선 LG배 관련 기권패 글에서 썼던 내용인 국가 간의 다른 계가 방식으로 역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었는데 이는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에서 열릴 제 1회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이 중국의 불참 통보로 대회가 연기된 것이다.

제 1회 쏘팔코사놀 대회는 한국기사 4명, 중국기사 3명, 일본기사 1명, 대만기사 1명이 참가하는데 커제 9단은 와일드카드로 초청받았으나 중국기원이 크게 반발하면서 암묵적인 보이콧을 실행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기원은 다시 바둑 규칙을 수정할지 관심 포인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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