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안에 인생이 담겨 있다.' 라는 말은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생사 복잡 무쌍해 보이지만 한 판의 바둑과 신통히도 닮았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바둑 동네에서 회자되는 무수한 격언, 명구(名句)들이다. 반상(盤上)의 ‘공자말씀’들은 실제 사회에서도 삶의 지표로 훌륭히 적용된다. 강의 준비를 못한 인생 카운슬러 선생님들은 급한 대로 ‘바둑 격언집’ 들고 강의실 들어가도 절대 망신당하지 않을정도로 바둑판 안에는 무수한 인생의 가르침이 있다.
1. 일수불퇴 (一手不退)
바둑 헌법 1조 1항은 ‘일수불퇴’부터 시작된다. 이건 격언이라기보다는 규정이지만, 거역 못할 엄격함을 담고 있다. 무를 수 없는 건 인생도 마찬가지란 점에서 둘은 시작부터 닮아있다. 수상전이 벌어졌을 때 딱 한 차례만 두 번 착점을 허용해준다면 백골난망이겠는데 어림도 없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입단 결정국에서 한 수를 딱 한 줄 옆으로만 두었더라면 그는 프로기사가 돼 전혀 다른 청년기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떤 길이 더 좋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일수불퇴’는 바둑에서나 인간사에서나 변치 않는 제1조다.
2. 선작오십가자필패 (先作五十家者必敗)
두번째 바둑 격언은 ‘선작오십가자필패(先作五十家者必敗)’다. 50집을 먼저 짓는 사람이 진다는 뜻이다. 형세가 유리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방심하게 되어 지기 쉽다는 것을 일깨우는 격언이다.
바둑에서 50집은 전국(全局)의 절반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이다. 이런 부동산 거부(巨富)가 종당엔 필히 망하게 돼 있다는 건 분명 악담인데, 대신 반상의 유랑민이나 무주택자들에겐 엄청난 위로가 된다. 우세할수록 마음의 이완을 경계하란 게 본래의 뜻이겠지만 아무튼 통쾌하다. 떵떵거리던 고관 또는 재벌 2세들의 급전직하 모습에서 선작오십가자의 교훈이 떠오른다. ‘필패’까지는 아니어도 ‘망신’은 충분했다. 이쯤 되면 바둑은 분명한 인생의 축소판이다
3.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이 격언을 마주할 때면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정신까지 혼미해져 온다. 내가 먼저 산 뒤 남을 죽이라니. 바둑용어가 아니었다면 무슨 조폭들의 행동강령을 떠올리게 하는 격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바둑이란 게임은 상대를 멸(滅)하지 않으면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무시로 발생한다. 아생연후 ‘살타(殺他)’ 대신 ‘봉타(奉他 남을 떠받들어 봉양하기)’는 종교 세계에서나 있을 꿈같은 일이다. 다시 한 번 원문을 읽어보자. 내가 일단 살아야 총이건 칼이건 손에 쥐고 상대를 요리할 수 있단다. 바둑판 안에 인생이 담겨 있는 만큼 현실적인 격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4. 기자절야(棋者切也)
전문 바둑격언 탐험에 들어가보자 우선 기자절야(棋者切也). 바둑의 맛은 역시 끊음에 있다. 돌들이 양단되면 쫓고 쫓기는 공방 속에 무궁한 변화가 생성되고 박진감이 증폭된다. 이 격언은 승부에 도움을 준다는 다른 격언들과는 달리 대국에 임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권하고 있다. 하긴 싸움 없는 집바둑처럼 싱거운 건 세상에 없다. 바둑 둘 때는 토지업자, 측량사, 경매상보다는 투사, 파이터, 용사(勇士)가 되라. 수백, 수천 년 전 선현이 이런 세밀한 부분에 대해 격언으로 남겼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똑같다. 뭐든 시작하고자 할때는 마음을 단단히먹고 굳은 마음가짐을 가지는 부터가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위기십결(圍棋十訣)
당나라 현종은 '기대조(棋待詔)'라는 벼슬을 두었는데, 이는 바둑의 최고수에게 헌정되는 자리였다. 당시 기대조였던 당나라의 바둑 고수 왕적신(王積薪)이 바둑의 비결을 담은 ‘위기십결’을 지었다. 위기십결은 지어진 지 천년 이상 지났지만 바둑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유용한 잠언으로 전해 내려온다.
열가지 사자성어를 알아보도록 하자.

1) 不得貪勝(부득탐승) - 승리를 탐하지 말라. (승리에 집착하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
부득탐승은 글쓴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이며, 이 사자성어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동안에도 항상 가슴속에 새기며 연애, 주식투자 등 모든분야에 다 적용되는 것같다.
바둑에서는 항시 평정심을 가지고 최선의 한 수를 추구해야 하며, 이기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하면 욕심이 생긴다. 마음이 흔들리면 통찰의 순간은 오지 않는다. 억지로 이기려는 마음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기 쉽다. 평상심의 유지,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부득탐승’은 ‘반전무인’과 통하는 말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두면 결과가 좋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부득탐승은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경구로, 큰 승부에 명국 없다는 말이 ‘부득탐승’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2) 入界宜緩(입계의완) - 상대의 진영에 들어갈 때 마땅히 완만하게 하라.
상대의 진영에 침입 혹은 삭감(적의 집을 부수기 위한 일)을 할 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을 경계한 금언이다. 상대의 세력이 강한 곳에서는 보다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또한 입계의완은 새로운 분야에 진입할 때 마땅히 완만한 자세를 취할 것을 제안하므로, 비단 바둑뿐 아니라 전 분야에 통용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초심자가 새로운 분야에 접근할 때, 관망하는 태도와 신중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3) 攻彼顧我(공피고아) - 상대를 공격하기 전 나를 먼저 살펴라.
적을 공격할 때는 먼저 나의 결점 유무와 능력 여부를 살펴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며, 상대로부터 반격을 당할 여지는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보통 상대를 몰아치듯 공격을 할 때에는 감정이 앞서기 쉬운데, 이럴 때일수록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자신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나머지 위기십결 사자성어와 위기오득은 다음 下편 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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