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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바둑의 역사 8 ( 중국 2) 가. 현대 중국 바둑의 흐름  2. 본격적인 중일 바둑 교류의 흐름  본격적인 중일 간의 바둑교류는 1959년 중국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 참의원 마쓰무라(松村謙三)4)와 천이의 회담으로 성사되었다. 마쓰무라가 “6억 중국국민에게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서라면 중국에 뼈를 묻겠다”라는 세고에(瀨越憲作)5)의 말을 당시 부총리였던 천이에게 전하자, “바둑은 정치와는 일절 무관한 것으로 일본 측에서 교류를 해 준다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회답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일본의 바둑 방문사절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 1960년, 중국과 일본의 국교가 수립되기 12년 전의 일이다. 4) 마쓰무라 켄죠(松村謙三, 1883~1971)5) 세고에 겐사쿠(1889~1972). 일본 프로기사로, 중국 천재 바둑기사 .. 더보기
바둑의 역사 7 ( 중국 편) 가. 현대 중국 바둑의 흐름   1. 일본과의 교류를 통한 중국 바둑의 발전    중국 바둑은 그 역사가 깊은만큼 강자들이 즐비하고, 바둑인구 역시 한국과 일본이 상대가 안될정도로 많다.  2013년에는 개인전으로 치러진 세계대회 6개의 우승컵을 모두 가져갔고, 2014년, 2015년 2년 연속으로 단체전 세계대회인 농심배에서도 우승을 거두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약 10년 간 부동의 세계최강이었던 한국바둑이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중국에게 위협을 받더니, 그로부터 약 10년 만에 최강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처럼 바둑에서도 일본▷한국▷중국의 순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바둑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 더보기
바둑의 역사 6 (일본편 2) 나. 일본 바둑의 역사   1. 근대적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들  일본에는 바둑이 전문화된 역사가 오래된 만큼 유명한 기사들도 많다.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3명의 일본 통일의 영웅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초대 혼인보 산사, 고금을 통틀어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일컬어질 뿐만 아니라 과거 힘에 의거한 바둑에서 합리적 계산을 통한 근대적 바둑으로의 전환을 주도하였고, 단위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제4대 혼인보 도사쿠, 19세에 혼인보의 후계자로 지명되고 이후 13년 간 총 19국의 오시로고에서 전승을 거두었으며 ‘슈사쿠 포석’이라는 근대 포석의 기초를 마련한, 만화 『고스트 바둑왕』에서 ‘사이’가 히카루 이전에 머물렀던 기사 슈사쿠 등 모두 소개하자.. 더보기
바둑의 역사 5 (일본 편) 가. 일본 바둑의 역사 1. 일본 바둑 근대화와 주요인물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에게 밀리기 이전까지 일본 바둑은 실력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임과 동시에 전세계 에 바둑문화를 전파한 바둑선진국이었다. 중국의 바둑천재 오청원은 선진바둑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하여 살아있는 기성(棋聖)이라 불리게 되었고, 한국의 바둑천재 조치훈과 조훈현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여 각각 일본과 한국의 최고가 되었다. 일본 바둑이 어떤 과정을 통해 20세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세계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는지 그 경위를 알아보자.                                                                            2. 근대 제도의 발전과정일본에서 일종의 전문기사.. 더보기
바둑의 역사 4 (전문기사의 등장, 바둑 제도의 발전) 라. 바둑의 역사1. 전문기사의 등장조선시대에서 바둑은 개인적인 소일거리였고, 다수가 모이는 경우에도 개인적 친분관계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가 되면서 일부 신문들이 유명 기사들을 초대하여 대국하게 하고 그 기보와 관전기를 신문에 게재하거나 전국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바둑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를 통해 실력이 있는 기사들은 바둑을 두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아주 극소수였지만 전문기사라 할 만한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전조선위기 선수권대회’ 관전기 스크랩 기사 먼저 1926년에 가 순장바둑 대국보를 게.. 더보기
바둑의 역사 3 (근대바둑의 성립과 발전, 한국 근대 바둑의 시작) 다. 바둑의 역사  1. 근대바둑의 성립과 발전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고대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일부 상류층 사이에서만  행해지던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게임의 토대를 갖추게 된 것은 중세 일본에서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일본 막부(幕府) 시대에 바둑은 국기(國技)로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바둑을 업(業)으로 삼는 기사(棋士) 제도와 본인방(本因坊)등의 바둑가문이  생기고, 이들에 의해 룰이 정비되며 각종 이론, 정석이 태어나는 등 비로소 근대경기로서의 틀과 체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가문세습제도 대신 협회(일본기원)와 프로제도가 탄생하고,  신문사들이 기전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 더보기
바둑의 역사 2 (Why, How, where? 가장 오래된 기보는?) 나. 바둑의 역사 1. 바둑은 왜 만들어졌을까?   1편에서의 요임금창제설에 따르면 바둑은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바둑을 ‘인생에 있어서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성왕이 아들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교육의 도구가 바둑이었다는 얘기일 것으로 추측된다.하지만 이 또한 사실 '어리석은 아들'이라면 바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정확성은 떨어진다.바둑판 한 가운데의 점을 천원(天元)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바둑판 교차점이 361개인 것이 음력의 날짜 수와 비슷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바둑이 원래는 역학(易學)이나 천문학의 도구였다는 설도 있으며, 천체 관측설농경(農耕)사회였던 고대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 더보기
바둑의 역사 1 ( who, when?) ※ 시작하기에 앞서.. 바둑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그 어떤 누구도 정확하게는 모른다.하지만 전세계에 수많은 불가사의한 유적들이 있는 것처럼 바둑의 역사 또한 불가사의한 부분이 존재한다. 모두 추측일뿐이지만 현재까지 제기된 주장들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자. 가. 바둑의 역사 1. 바둑은 누가 만들었을까? 바둑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은 중국 성왕 요(堯)임금이다. 중국의 박물지(博物志)에 나온다는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그것을 잘했다)”가 요임금 창제설의 근거이다. 그러나 박물지는 일종의 ‘지괴소설(志怪小說, 괴상하고 특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미스테리를 다룬 글)’로서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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